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8장 : 본문 문제 (2)---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24)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8장 : 본문 문제 (2)---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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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8장 : 본문 문제 (2)---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패스터 정 2016. 10. 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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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8장 : 본문 문제 (2)---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인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입니다.

이 기사는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 본문 문제 (2)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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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37절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영어 킹제임스 성경).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킹제임스 흠정역).

여기에 나오는 이 신실하고 사랑스러운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내시의 증언은 비평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원본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단지 소수의 후대 사본들에서만 발견되며 에라스무스가 라틴 벌게이트로부터 그리스어 본문에 삽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구절이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에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또한 다른 많은 구 라틴 사본들(l, m, e, r, ar, ph gig )에서도 나타난다. 이 구절은 또한 그리스어 코덱스 사본 E(주후 8세기)와 몇몇 그리스어 사본들(36, 88, 97, 103, 104, 242, 257, 307, 322, 323, 385, 429, 453, 464, 467, 610, 629, 630, 913, 945, 1522, 1678, 1739, 1765, 1877, 1891 및 다른 사본들)에서도 발견된다.

이런 본문들 중에서도 정확한 단어들의 차이점이 있지만 이 구절이 어떻게 다른 사본들로부터 삭제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의 본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구절을 포함하는 사본들 안의 이문들은 매우 사소한 것이다. 예를 들어, 88Philippos(빌립)를 생략하고 eunouchos(내시)auto(, very)를 첨가한다. 따라서 88에서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는 만약 그대가 전심으로 믿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시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참 아들인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이문은 여러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서 매우 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문들로 인해 본문으로부터 나온 그 구절을 제거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본문에 있는 구절을 제거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레네우스(주후 202), 키프리안(주후 258), 암브로시아스터(주후 4세기), 파시안(주후 392), 암브로스(주후 397), 어거스틴(주후 430) 그리고 테오필랙트(주후 1077) 등은 모두 사도행전 837절을 인용했다.

본문 학자들 앞에 놓인 자연적인 질문은 바로 이렇다. 만약 그 본문이 진짜라면 무슨 이유로 어떤 서기관은 그것을 삭제하기를 원했는가? Metzger, 315-316.

사도행전에 대한 주석에서 알렉산더는 가능한 대답을 제공한다. 3세기말까지는 기독교 개종자들의 침례를 연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 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진실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을 이해했는지 그리고 그 당시에 널리 퍼진 다양한 이단 신념들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를 확실히 알기 위한 것이었다. J. A. Alexander, The Acts Of The Apostle (New York: Scribner, 1967), vol. 1, 349-350.

이런 이유로 침례가 회심 이후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어떤 서기관이 본문으로부터 이 구절을 삭제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 뒤를 이은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이 구절이 삭제된 이유를 설명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런 추측은 이 본문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설명만큼 가능하다. [역자 주: 신약성경을 보면(16:14-15, 33 ) 모든 경우에 어떤 사람이 회심하고 믿음의 고백을 하면 그 즉시 침례를 주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보존 때문에 이 본문은 구 라틴 사본들에서 뿐만 아니라 몇몇 그리스어 사본들에도 남아 있다. 명백히 그 본문은 어떤 학자들이 제안한 것처럼 6세기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이레네우스는 믿음을 가진 내시 자신이 즉각적으로 침례받기를 요청했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Against Heresies: I 1:433.

마찬가지로 키프리안은 자신의 글에서 그 구절의 상반절을 인용한다. “사도행전에서, ‘, 여기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 받는 것을 방해할 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빌립이 말했다. 만약 그대가 전심으로 믿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Treatise 12:3:43.

사도행전 837절을 명확하게 인용하는 이들의 진술문은 2세기 말과 3세기 초반에 나타난다. 우리는 이 구절이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이 필사되기 전부터 이미 오래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그 자체가 그것의 확실성과 성경 보존을 입증하는 것이다.

[역자 주: 아마도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믿음의 고백도 없이 유아세례를 주려면 이와 같은 구절이 치명적이었으므로 유아세례를 주는 단체나 개인이 이 구절을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도행전 9장 5-6절

5 And he said, Who art thou, Lord? And the Lord said, I am Jesus whom thou persecutest: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6 And he trembling and astonished said, Lord, what wilt thou have me to do? And the Lord said unto him, Arise, and go into the city, and it shall be told thee what thou must do(영어 킹제임스 성경).

5 그가 이르되, , 누구시니이까? 하니 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 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킹제임스 흠정역). [역자 주: 개역성경에는 이 구절들이 들어 있으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그리스어 본문에는 삭제되어 있음.]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5절의 내용은 구 라틴 사본들과 약간의 벌게이트 사본들에 들어 있다. 이 구절은 또한 페시타와 그리스어 코덱스 사본 E, 그리스어 사본 431에 있지만 지금처럼 5절에 있지 않고 4절에 있다.

6절 말씀 즉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께서 그에게 이르시되.”는 구 라틴 성경, 라틴 벌게이트 그리고 몇몇 고대 시리아 역본과 콥트 역본에 있다. 그렇지만 이 구절들은 대다수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되지 않으며 또한 비평 본문이나 다수 본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이 구절들은 공인 본문에 포함된다. 표면적으로 볼 때 본문상의 증거는 약하게 보인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대다수의 그리스어 증거들을 물리치고 공인 본문을 수용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이 구절들이 다른 언어들에서 보존되어 있고 내적 증거 역시 사실상 바울의 개종 당시에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신 것이 확실함을 보여 주므로 이 구절들은 확실한 것이다.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의 회심이 이루어진 것을 보여 주는 유일한 성경 기록이 아니다. 사도행전 2210절과 2614절에서 우리는 사도 자신의 증언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는 모든 그리스어 본문에서 문제의 그 구절들이 나타난다.

사도행전 22장 10절 (킹제임스 흠정역)
내가 이르되, ,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하매 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하도록 정해 놓은 모든 일을 거기서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614(킹제임스 흠정역)
우리가 다 땅에 쓰러졌을 때에 내게 말씀하시는 한 음성이 있어 내가 들으매 히브리말로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회심을 이야기하면서 문제의 그 말씀들을 분명히 인용했다. 성령님께서 사도행전 95-6절에 이 말씀들이 포함되도록 영감을 주셨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이 말씀들이 그 사건이 원래 발생했을 때 바울에게 주어졌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 말씀들이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의 사도행전 96절에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들은 다른 역본들(그루지아, 슬라브, 이디오피아 역본 등)뿐만 아니라 라틴 사본들(ar, c, h, l, p, ph, t)에도 보존되어져 있다. 모든 본문 비평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본문 비평가는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그 말씀을 사도행전 2210절과 2614절에 포함시킴으로써 그것들의 확실성에 대한 증거를 낳으셨다.

이와 유사한 예가 마태복음 1917절에서도 좀 더 강한 본문의 증거와 함께 언급된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다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 하시니그런데 현대 역본들의 본문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네가 어찌하여 선한 일에 대하여 내게 묻느냐?”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답변인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니라라고 표현한다. [역자 주: 대부분의 한글 성경들도 이와 같다.]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이 구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훌륭하게 확립한다. 만약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며 그리스도가 선한 이로 불린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되어야만 한다. 전통 본문에 제시된 것처럼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한 그리스어 사본들의 지지는 상당하다. 엉셜 사본들 중에 이 구절은 CW(5세기), KΔ(9세기) 그리고 몇몇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이 구절은 대다수의 그리스어 소문자 사본과 성구집의 본문이다. 또한 초기 구 라틴 성경, 구 시리아 역본 그리고 콥트 역본 및 다른 초기 역본들의 본문이다. 이 본문의 증거는 사도행전 95-6절의 증거보다 훨씬 더 강하다.

또 사도행전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는 원래 본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부가적인 참조 자료가 있다. 다시 성령님께서는 이 사건이 인용된 두 개의 다른 곳을 우리에게 제공하면서 이 본문 문제를 정리하신다. 이 두 경우 모두 논쟁이 되는 마태복음 구절을 지지하는 구절에 본문의 이문이 없다.

마가복음 1018(킹제임스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1819(킹제임스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위의 두 구절 중 어떤 구절에서도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선한 일에 대하여 내게 묻느냐?”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또 두 구절 모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명사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1917절의 본문이 옳은지 그른지 사람들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옳은 독본인 부가적인 구절들에서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동일한 원리가 사도행전 95-6절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들에 대해 친히 증언하신다.

로마서 8장 1절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영어 킹제임스 성경).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령을 따라 걷느니라(킹제임스 흠정역).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라는 말씀은 1절과 4절에 나타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중복오사라고 불리는 필기상의 특별한 오류 유형으로 생각한다. 중복오사란 한 글자나 음절 혹은 단어나 구가 중복 기록되는 것을 말한다.

이 생각은 한 서기관이 우연히 4절의 말씀을 1절로 필사했으며 그 뒤로 본문의 그 오류가 나중의 사본들에서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필사 오류는 본문들의 증거 안에 드러난 많은 양의 이문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분명히 일어난다. 그렇지만 단지 한 단어나 구가 반복되었다는 것이 필사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어 구절 ‘me kata srka peripatousin alla kata penuma’(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는 대다수의 그리스어 사본들이 지지한다. 그것들 중에는 33, 88, 104, 181, 326, 330, 451, 614, 630, 1241, 1877, 1962, 1984, 1985, 2492 2495가 있다. 그것들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것으로 인정된다.

이 구절은 또한 코덱스 사본 K(9세기)와 사본 P(9세기)에도 포함되며 시내 사본의 난외에도 있다. 이 구절은 또한 대다수의 그리스어 성구집의 본문이다. 이 구절을 담고 있는 초기 역본들은 약간의 구 라틴 사본들(ar, o ), 시리아의 하클레안 역본 그리고 그루지아 역본 등이다. 이 구절의 일부를 담고 있는 또 다른 이문은 ‘me kata sarka peripatousin’(육체를 따라 걷지 않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은 A, D06, Ψ 및 몇몇 소문자들(81, 256, 263, 365, 629, 1319, 1573, 1852 2127 )에서 발견되는 본문이다. 이 구절은 또한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주후 4세기)라틴 벌게이트는 4세기에 만들어졌지만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벌게이트 사본은 5세기경의 것이다. 와 페시타의 본문이다. 일부분에서 또는 전체적으로 이 본문은 광범위하게 고대 본문의 지지를 받는다.

또한 테오도렛(Theodoret, 주후 466), 외큐메니우스(Ps-Oecumenius, 주후 10세기) 그리고 테오필랙트(주후 1077) 등은 문제가 되는 부분과 함께 1절 전체를 인용한다. 우리는 또한 바실(주후 379)이 이 구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바실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죄의 권세하에 있는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더 충분히 발전시킨 후에 그는 [바울] 그러한 압제적인 지배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말씀 안에 확실하게 진술한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줄까?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더 나아가 그는 덧붙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걷지 아니한다.” Basil, "Concerning Baptism," The Fathers Of The Church: Saint Basil Ascetical Works, trans. M. Monica Wagner, vol. 9 (New York: Fathers Of The Church, Inc., 1950), 343.

여기서 이 부분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서 교리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자에게는 어떤 종류의 정죄함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체 성경 기록을 간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비록 영원한 정죄는 아니지만 어떤 다른 정죄로 고통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듣는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육신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은 나무나 풀 그리고 지푸라기의 행위()를 낳는다(고전3:12). 모든 성도들의 행위는 불에 의해 시험을 받을 것이다. 이때에 육신의 행위()는 불태워지고 성령님을 따른 행위()는 견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고전3:15)는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의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죄’(Condemnation)라는 단어가 단지 심판의 의미뿐만 아니라 승인받지 못하는 것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로마서 8장의 내용은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육체를 따라 걷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걷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크리스천은 성령과 육체 사이의 지속적인 전쟁터에 있다(5:16-18). 성령님을 따르는 신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렇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육신을 따르려는 자들에게는 [신자일지라도] 분명히 정죄함이 있다.

요한은 자신의 어린 자녀들에게 성도들의 마음이 그들의 크리스천 삶에서의 잘못된 점을 정죄하거나 승인하지 않으며 하나님도 그렇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3:20-21).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성도를 향한 심판이 있을 뿐만 아니라(고전3:12-15; 고후5:9-10)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죄 안에 거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요구하는 심판을 이 땅에서 집행할 수 있다(5:1-10; 요일5:16).

성경적으로 말해서 성령님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육체를 따라 걷는 신자들에게는 정죄가 있다. 따라서 로마서 81절의 끝 부분은 신학적으로 매우 건전하며 확실하다.

요한일서 5장 7절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영어 킹제임스 성경).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말씀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킹제임스 흠정역). [역자 주: 개역성경은 원래의 6절을 둘로 나누어 마치 6절과 7절이 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거기에는 흠정역 성경의 7절이 없다.]

이 구절은 보통 요한의 콤마’(Johannine Comma)라 불리며 대다수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사본의 첫째 판과 둘째 판은 요한의 콤마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에라스무스는 만약 이 콤마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사본이 있다면 자신의 셋째 판에서 이 콤마를 넣기로 약속했다.

그때에 프로이(또는 로이)라는 이름의 프란체스코 수도사가 라틴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이 콤마를 포함시킴으로써 그리스어 사본을 변경했다. 에라스무스는 이 위조된 사본을 보고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1522년 판에 이 콤마를 포함시켰다.” 그렇지만 현재 메츠거(Dr. Bruce Metzger)가 인정하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숨겨진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291).

메츠거는 에라스무스를 연구한 존경받는 전문가 용(H. J. de Jonge)이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하였음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의 관점에서 이 콤마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 같은 허위 보고를 확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성에 대한 훌륭한 증거이며 우리의 성경에서 반드시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이 구절의 교리적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구절의 확실성을 증명하는 외적 증거와 내적 증거 때문이다.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비록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요한의 콤마는 몇몇 증거들에서 발견된다. 요한의 콤마는 629(주후 14세기), 61(주후 16세기), 918(주후 16세기), 2473(주후 17세기) 그리고 2318(주후 18세기)에 들어 있다.

또한 221(주후 10세기), 635(주후 11세기), 88(주후 12세기), 429(주후 14세기) 636(주후 15세기)의 난외에 들어 있다. 현존하는 요한일서 5장의 사본들 중에서 이 콤마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 500여 개나 된다. Kurt Aland, in connection with Annette Benduhn-Mertz and Gerd Mink, Text und Texwert der Griechischen Handschriften des Neuen Testament: I. Die Katholischen Briefe Band 1: Das Material (Berlin: Walter De Gruyter, 1987), 163-166.

그러므로 공인 본문에서 발견되는 본문이 그리스어 사본들의 증거 면에서 후대 사본들의 지지를 받는 소수의 본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본문을 가진다는 사실이 그 구절이 원본의 본문이 아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비평 본문은 ‘Iesou’(예수의)라는 단어가 공인 본문 요한일서 17절에 있는 ‘Iesou Christou’(예수 그리스도의)를 대신하는 진짜 본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Iesou’(예수의)를 지지하는 사본은 24개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것은 소수의 본문이다. 반면에 공인 본문에서 발견되는 ‘Iesou Christou’(예수 그리스도의)라는 본문은 무려 477개 사본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일서 220절에서 ‘pantes’(모든)라는 본문은 단지 12개 사본의 소수 지지를 받지만 ‘panta’(모든 것)라는 본문은 491개 사본들의 다수 지지를 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 본문은 그 구절에서 다수의 본문이 아니라 소수의 본문을 선호한다.

이런 현상은 요한일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서 생기는 공통 현상이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어떤 본문이 소수의 사본들에 있기 때문에 원본의 본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그리스어 본문의 증거는 약하지만 요한의 콤마에 대한 라틴어 본문 증거는 매우 강하다. 요한의 콤마는 그리스어 사본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라틴 사본들의 대다수에 들어 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요한의 콤마가 제롬의 원본 라틴 벌게이트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만 외적 증거는 그것이 분명히 그 성경의 일부분임을 보여 준다.

제롬은 구 라틴 역본들이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요한일서 57절을 포함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제롬의 인용문은 그리스어 공인 본문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구 라틴 본문 역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라는 진술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Prologue To The Canonical Epistles.

다른 교부들도 요한의 콤마를 인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키프리안(주후 258)이 그 콤마를 알았을지 의문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용문은 확실하게 그가 이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키프리안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마찬가지 사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에 대해서도 이 세 분이 하나이다라는 기록으로 확증된다.” Treatise 1 5:423.
또한 프리스킬리안(주후 385)이 이 콤마를 인용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요한은 ‘땅에서는 물과 육체와 피 이 셋이 증언을 하며 이 셋은 하나이다. 하늘에서는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 증언하시며 이 세 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Liber Apologeticus.

이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를 반대한 아리우스에 대항하기 위해 무명의 작가가 수집한 바시마둠’(Vasimadum, 주후 380)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복음전도자 요한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 증언하시며 이 세 분은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Varimadum 90:20-21

게다가 카씨안(주후 435), 카씨오도루스(주후 580)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 등장한 아프리카와 서방 지역의 다른 감독들 다수가 요한의 콤마를 인용했다. 어떤 다른 출처들은 Speculum (또는 주후 450년의 m), Victor of Vita (주후 489), Victor Vitensis (주후 485), Codex Freisingensis (주후 500), Fulgentius (주후 533),

Isidore of Seville (주후 636), Codex Pal Legionensis (주후 650) Jaqub of Edessa (주후 700)를 포함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21세기의 WaldenessAlbigenses에 의해 사용된 사도신경의 판에서 또한 발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이 그리스어 증거를 제외한 다량의 고대 본문들의 지지를 받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내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요한의 콤마 구조는 양식 면에서 확실히 사도 요한의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언급한다. 만약 요한일서 57절이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8절의 해석이라면 우리는 그 구절이 말씀대신 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구절은 그리스어 ‘logos’를 사용하는데 로고스는 독특하게 요한의 양식에만 있으며 이 구절이 참으로 요한의 것이라는 증거를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요한이 하나님의 삼위와 그 세 분이 증언하는 것 즉 요한일서 413-14절을 연결하려 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세 개로 된 그룹들 - 이 중 하나는 하늘에 있고(7) 다른 하나는 땅에 있다(8) - 을 포함하는 증거들이 병행해서 나오는 것 자체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강력한 증거는 그리스어 본문 자체에서 발견된다. 요한일서 58절을 보면 그리스어로 중성의 세 명사 즉 영과 물과 피가 있다. 그렇지만 이 단어들 뒤에 남성인 분사가 따라온다. 여기서 그리스어 구절은 ‘oi marturountes’(who bare witness, 증언하는 )이다.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만약 그 자체로만 남는다면 형편없는 문법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심지어 더 확실한 것은 6절은 동일한 분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중성으로 되어 있다(그리스어로는 ‘to marturoun’). 어떤 이유로 이 세 개의 중성 명사가 남성 분사의 지지를 받는가?

7절을 보면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7절에서 우리는 두 개의 남성 명사(아버지와 아들) 뒤에 한 개의 중성 명사(성령)가 오는 것을 본다. 이 구절은 또한 그리스어 남성 분사인 ‘oi marturountes’를 가지고 있다. 8절을 소개하고 있는 이 절과 함께 7절에 있는 남성 명사들로 인해 8절의 분사가 남성이 되는 것은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만약 7절이 없다면 그리스어 문법 면에서 부적합할 것이다.

비록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주후 390)가 요한의 콤마의 확실성에 대해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요한의 콤마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법의 결함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신학적 성향(Theological Orientations)이라는 글에서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는 자신의 용어들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three)이라는 단어를 남성으로 표현한 뒤에 당신이나 혹은 당신의 문법책 규칙과 정의와 반대되는 중성의 세 단어를 넣는다.

처음에 이라는 단어는 남성으로 표현하고 그 뒤에 중성으로 한 단어 한 단어 한 단어를 더하는 것과 먼저 한 단어 한 단어 한 단어를 남성으로 표현하고 그 뒤에 남성이 아닌 중성으로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 이런 일이 가능할까? Fifth Orientation: The Holy Spirit.

[역자 주: 그레고리는 7절이 빠지면 그리스어가 부적합하게 됨을 지적한다. 그런데 7절이 들어가면 아버지와 말씀이 남성이므로 그리스어 문법에 아무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연합성서공회의 그리스어 본문에 있는 대로 요한일서 5장이 되려면 그리스어 문법에 따라 ’(three)하나’(one)라는 단어가 중성이어야 한다. 그런데 ’(three)하나’(one)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무언가가 그 그리스어 본문에서 빠졌음을 뜻한다. 그것이 바로 공인 본문의 요한의 콤마이다.]

만약 우리 모두에게 7절이 없이 단지 6절과 8절만 있다면 그레고리가 여기서 그리스어 문법과의 불일치를 인식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사실 다른 학자들도 동일한 것을 인식했다. 이것은 The Doctrinal Various Reading of the New Testament Greek(1891)이라는 논문에서 연합신학대학원(Union Theological Seminary)의 다브니(Robert Dabney)가 주장한 바이다.

미들톤 감독은 Doctrine of the Greek Article이라는 저서에서 7절이 이 구문의 그리스어 구절에 따라 반드시 그 본문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매튜 헨리의 유명한 주석서에는 우리가 만약 8절에서 적합한 그리스어를 가지려면 반드시 7절이 있어야만 한다는 진술이 있다. 실제로 요한일서 주석은 레이놀즈(Mr. John Reynolds of Shrewsbury)의 저서이다. 그는 1714년 매튜 헨리의 사망으로 불완전하게 남게 되었던 [사도행전의 결말까지만 완성됨] 매튜 헨리의 주석을 완성한 성직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외적 증거가 요한의 콤마의 진실성을 지지하며 내적 증거도 그것을 매우 가능하게 한다. 종교 개혁 때에 하나님께서 전통 본문과 함께하시고 오직 그 본문만을 사용하셨다는 생각할 때 우리는 요한의 콤마가 믿을 만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2장 19절

And if any man shall take away from the words of the book of this prophecy, God shall take away his part out of the book of life, and out of the holy city, and from the things which are written in this book(영어 킹제임스 성경).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킹제임스 흠정역).

이 구절의 초점이 생명나무가 아니라 생명책이라는 점을 다루지만 사실 여기의 문제는 그 이상으로 크다.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만들면서 사용한 코덱스 사본 1r은 요한계시록 22장의 마지막 6구절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라스무스가 라틴 벌게이트를 취하여 거기서 이 구절들을 다시 그리스어로 번역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rika Rummel, Erasmus' Annotations on the New Testament: From Philologist to Theologian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86),

93.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1516년 판 주석(675)에서 자신이 "ex nostris Latinis supplevimus Graeca"(라틴어로부터 그리스어를 공급했다)고 공개적으로 공표했다는 주장이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2장의 마지막 6구절이 라틴 벌게이트에서 그리스어로 재번역된 것이라고 어떤 이들은 주장한다. 그렇지만 에라스무스의 1516년 판의 재판에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그의 주석들의 결론을 담은 그의 주석 675쪽에 이런 말이 없으며 이런 말은 그 판의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가정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첫째, 만약 에라스무스가 이 마지막 6구절을 공급하기 위해 라틴 벌게이트를 사용했다면 과연 라틴 성경의 사용이 여기의 본문을 부패시켰는가? 둘째, 코덱스 사본 1r이 정말로 이 구절을 위해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유일한 그리스어 사본이었는가?

확실히 라틴 벌게이트와 그리스어 공인 본문은 이 마지막 6절에 있어서 유사하다. 물론 이것은 라틴 벌게이트의 기초가 공인 본문과 일치하는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이었다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2세기와 3세기 그리고 4세기의 그리스어 사본들의 대다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실 라틴 벌게이트와 공인 본문은 정확하게 같지 않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2220절의 결론을 보면 공인 본문은 ‘Amen. Nai, erchou, Kurie Iesou’(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라고 하지만 라틴 벌게이트는 ‘amen veni Domine Iesu’(아멘 주 예수님이여 오시옵소서)라고 한다. 공인 본문은 부가적인 확증의 말 즉 ‘nai’(과연 그와 같이)를 포함하지만 비평 본문이나 라틴 벌게이트는 이것을 포함하지 않는다.

만약 에라스무스가 라틴 본문을 그리스어로 재번역했다면 그는 정말로 매우 놀라운 일을 한 것이다. 이 여섯 구절은 공인 본문에서 136개의 그리스어 단어로 구성되며 비평 본문에서는 132개의 그리스어 단어로 구성된다. 이 두 개의 본문을 비교할 때 이 구절들 안에는 단지 18개의 이문만 발견된다. 여기의 표는 이 6개 구절에서 발견되는 18개의 본문 차이점을 보여 준다. 이 각주의 특징 때문에 이번에는 이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로 음역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이문들은 개수와 특성 면에서 볼 때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이 두 개의 그리스어 본문 사이에서 늘 발견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바로 그 앞의 요한계시록 2210-15절은 동일한 특성을 가진 14개의 본문 이문을 가지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213-8절에는 20개 이하의 본문 이문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만약 에라스무스가 라틴어를 그리스어로 다시 번역했다면 훨씬 더 많은 이문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개의 본문은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에라스무스가 라틴어를 그리스어로 재번역했다 해도 그것은 성경의 보존이라는 교리에 아무 관계도 없다. 성경 보존이란 하나님께서 [인간 기록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들을 만든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그 이후 세대에까지 내내 그 말씀들을 유지하고 보존하신다는 것을 요구한다. 또한 성경 보존은 결코 이런 단어들이 단지 원본의 언어로만 보존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제 이것은 우리를 둘째 질문으로 인도한다. 에라스무스가 정말 라틴어를 그리스어로 다시 번역했을까? 본문 학자인 호스키어는 에라스무스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그는 에라스무스가 2049(호스키어가 141이라고 부른 사본)와 같은 다른 그리스어 사본들을 사용했다고 말하며 사실 증거들은 이 입장을 지지하는 것 같다. H. C. Hoskier, Concerning the Text of the Apocalypse, vol. 2 (Lodon: Bernard quaritch, Ltd., 1929), 644.

사본 2049는 공인 본문에서 발견된 본문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219절의 본문 이문도 포함한다. 이것 외에도 우리는 또한 그리스어 사본 296의 증거와 2067 사본의 난외 증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부가적으로 요한계시록 2216-21절에서 에라스무스가 필사한 그리스어 본문은 공인 본문의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과 일관성을 반영한다. 이것은 그 구절들이 다른 그리스어 사본들로부터 필사되었으며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재번역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2216절의 공인 본문은 비평 본문의 ‘dauid’(David)과 달리 ‘tou dabid’(the David)라고 기록한다. 영어는 이 두 개를 동일하게 다윗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지만 [역자 주: 한국어도 마찬가지임] 그리스어 본문은 분명히 다르다. 흥미롭게도 요한계시록 37절에도 동일한 것이 나온다.

이 구절에서 공인 본문은 요한계시록 2216절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이름 전에 정관사를 사용했지만 비평 본문은 다윗의 이름 전에 정관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6-21절에서 에라스무스의 본문에는 몇 개의 특이한 철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거기에는 정상적인 그리스어 ‘erchou’(오다) 대신에 ‘elthe’(오다)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사본을 필사하였으며 그 구절을 라틴 사본에서 그리스어로 재번역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우리는 에라스무스가 그 당시 가장 위대한 학자들과 사상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와 몇몇 다른 언어들에 유창했다. 그는 오다에 대한 평범한 신약성경 그리스어 단어가 ‘elthe’가 아니라 ‘erchou’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에라스무스는 요한계시록 227절과 12절 그리고 심지어 20절에서 오다를 뜻하는 ‘erchou’를 사용했다. 에라스무스가 이처럼 평범한 단어 형태를 멀리하고 2217절에서 특별히 ‘elthe’라고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더욱이 2217절에서 오다에 대한 라틴어는 2220절에서 사용된 ‘veni’와 동일한 라틴어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에라스무스가 실제로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코덱스 사본 1r’이 아닌 다른 그리스어 사본을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2219절에서 생명나무가 아니라 생명책이 맞는 단어임을 보여 주는 본문들의 증거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본문은 소수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라틴 증거들 사이에서 독점적인 본문이다. ‘생명책이라는 구절은 또한 구 보하이르어 역본(Bohairic)의 본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암브로스(주후 379), 바키리우스(주후 4세기 말), 프리마시우스(주후 552) 그리고 하이모(주후 9세기)의 저서에서도 발견된다.

이제 우리는 또한 내적 증거를 생각해야 한다. 생명나무라는 구절은 구약성경에 7번 나타나고 신약성경에 3번 나타난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으며 에덴동산에 있던 이 나무가 영원 속에서 다시 나타날 것을 알게 된다. 이것들을 종합해 볼 때 그들이 생명나무로부터 자신들의 몫(혹은 부분을) 빼앗긴다.”는 생각은 성경 기록과 합치되지 않는 것 같다. [역자 주: 성경의 용례로 볼 때 생명나무는 보상의 개념을 가진다.]

한편 생명책이라는 구절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7번 나타난다(4:3; 3:5; 13:8; 17:8; 20:12, 15; 21:27). 각각의 경우에 우리는 생명책이 이름을 포함하거나 이름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며 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시리라.”는 구절은 성경적인 본문과 매우 일치한다. [역자 주: 성경의 용례로 볼 때 생명책은 보상보다 더 원천적인 것 즉 생명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곧 생명책에서 이름이 빠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의 문맥은 생명책이 옳음을 보여 준다.]

이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 경고는 매우 불길하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요한계시록에만 적용하지만 사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 기록 전체에 해당된다(4:2; 30:6). 이 구절을 이 장에서 논의된 구절들에 적용해 볼 때 우리는 사본의 전달 과정에서 누군가가 본문의 어딘가에 더하거나 거기서 삭제했음이 확실하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그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학문은 숭고하고 고귀한 것이다. 그렇지만 학문이 주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려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숭고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다. 결국 성경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최종 학자인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 인간 학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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